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처인성 전투 (문단 편집) == 전투의 향방 == 기록에 따라 다 다르게 나와있다. 12월 16일 [[살리타이]]의 지휘아래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는 기록과, 살리타이가 일부 기병을 데리고 처인성 동문을 정찰왔다가 저격병의 기습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.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[[김윤후]]와 저격병들이 [[살리타이]]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는 것[* [[원나라]]의 공식 기록인 [[원사(역사책)|원사]]에서도 유시(流矢)에 맞았다고 적혀있다. 눈먼 화살, 즉 난데없이 날라온 화살이라는 뜻.], 그리고 지휘관을 잃은 [[몽골군]]은 당황해 했고 처인성의 [[승병]]과 천민들이 성문을 열고 나와 몽골군을 모조리 대파해버렸다는 것이다.[* 기본적으로 몽골군의 특징이 총사령관이 죽는 순간 전투를 멈추고 돌아가는 습성이 있다. 비슷한 예로 [[몽골-남송 전쟁]] 중 합주 [[조어성 전투]]에서 [[몽케 칸]]이 전사하자 다른 전선에서 남송을 공격하던 [[쿠빌라이]]와 우량카타이 등 3로군이 모두 철수했고, 머나먼 서방에서 정복전을 수행하던 서방 원정군 사령관 [[훌라구]]조차 쿠릴타이 참석을 위해 원정군 일부만 남겨두고 철수했다.] ||[youtube(HPzl49Ml9zM)]||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